탄탄스님(전 용인대 객원교수, 현 동국대 출강) |
아버지 세대는 늘 "우리 때는 많이도 배를 곯았느니라" 하며 이야기의 서두를 꺼내셨다.
일제 강점기 막바지쯤에 태어나 해방을 맞이하고 한국동란 6·25때 큰고모등에 업혀 경상도 어디로 피난살이를 다녀오셨다는 울아버지의 '그 우리 때란' 전쟁의 참화속에서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잿더미가 된 나라에서 무일푼으로 간신히 살아남아 배고픈 청소년기를 보내며 대한의 산업역군으로 피땀을 흘리고 조국 근대화에 동력을 보탠 시기를 늘 상기해주며 이제는 푸르른 청춘의 날들은 거진 다 소진하고 난뒤 팔순에 이른 아버지세대의 그 고단했고 너무도 힘겨운 세월이었다는 '그 우리때'를 지금까지 살아오며 상기도 뇌리에 깊숙히 아로새겨져 있기는 하다.
이제 어느 덧 중, 장년기에 이른 우리에게도 그 '우리때'를 좀 말해보라 한다면, 초로를 눈앞에 두어 점점 눈도 어두워지고 젊은날 대책없이 술깨나 마셔댄, 돌이킬 수 없는 과오가 있었으니, 각종 기저질환으로 복용약은 자꾸만 늘어가는 베이비붐시대의 말미에 태어난 우리 막둥이들의 그 '우리때'를 실없이 거론해 본다고 하면, 1979년도에 내나이 겨우 열 두살, 쌍팔해인 서울 올림픽 열리던 그 팔팔년에 재수를 하여서는 경기도 변두리의 미달 대학에 가까스로 들어갔다. 대학을 다니다가 군복무를 어찌어찌 겨우 해결하고나니, 386으로 불리우던 세대가 어느덧 486에 이르고 586을 넘어서 이제 얼추 모두가 686이 거진 다 되어가는 것이다.
세상나이로 60살이 다 되어간 80년대 학번 60년대생들, 이제 막 당도한 고령화 시대에는 경로당 출입은 커녕, 일흔 살(70)잡수신 더 큰형님(?)들 조차 여든(80)을 눈앞에 둔 삼촌세대의 잔심부름 이나 하는 시절이되었으니, 이제 쉰둥이 예순둥이 나잇살은 "에게, 고것도 나이다냐?" 하며 볼멘소리나 들어야 한다니, 예전의 40대 50대의 어린시절 쯤으로 돌아가서, 한창 '청춘의 한 시절' 이라고 해야할 처지로 그렇게 변화되어 고령화, 노령화를 곧바로 피부에 와닿게 체감해야 하는 세월이 다 된 것이다. 그러고보니 '우리때' 라고 해 보아야 우리가 기껏 유년기를 보낸 시절인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 박정희 유신정권이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저절로 덧없이도 무너지더니만 서슬퍼런 전두환의 신군부가 등장하던 그 시절의 언저리를 말함이다.
'우리때'의 그시절 어느날 문득 나타났다가 또 어느 날 문득 사라져 간 '이주일' 이라는 전설의 코미디언이 있었다. 이주일 만에 갑작스럽게 혜성처럼 등장하여 화제가 되었던 그 이주일이 맞긴하다. 머리카락 몇올 없는 민대머리에 콧대는 폭싹 주저 앉아 결코 미남축에는 끼지도 못할 처지를 "얼굴이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라는 지극히 겸손한 유행어를 유행 시키며 하루아침 일약 최고의 주가를 날리던 스타가 된 그 사나이는 어눌하고 부족한 듯한 표정으로 암울한 시절 온 국민을 폭소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그렇다. 세상을 이기는 최고의 지혜란, "나는 모자라고, 조금 못났습니다"가 아니었을까. 당대 최고의 대 스타의 반열에서 이미 또 한사람이 그 한 시절을 풍미했었는데, 그보다 몇 년전인가 더 앞선 시대 흑백 텔레비전시절 '웃으면 복이 온다'는 기치를 단 희극 프로에 자주 나오던 배삼룡이라는 코미디언도 있었다. 그가 입고 나오는 옷차림에서 부터 참지못할 폭소가 터져 나왔다. 헐렁한 통바지에 낡은 넥타이로 허리를 질끈 동여묶고 바지 한쪽은 삐죽이 올라와 있었으면 빨강 양말의 밸런스가 너무도 우수꽝스럽고 바보스러운 옷차림은 전국민이 그의 등장에서 부터 웃음보를 터트렸다. 늘 넘어지고 부딪히며 당황하면 말이 꼬여 헛말을 지껄이기도 하고 어쩔땐 덜렁대며 문을 찾지 못해 허둥대다가 벽에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바보스런 모습에 사람들은 정말 악의없이 마음껏 웃어제꼈다.
한참의 세월이 지나고 나니 구시대의 희극인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이제는 새로운 '개그맨의 시대' 가 왔지만, 그 예전처럼 웃음을 주던 희극은 '못난자들이 잘난척을 각축하는 시대" 로 이미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진정성있는 웃음보다는 거의 실소에 가까운 웃음을 유발하거나 말장난에 머무르고 난해하기 짝이 없는 억지스런 웃음, 하 수상한 수삼년쯤이 또 지나보니 잊혀져 갔던, 이제는 어느덧 칠십대 중반의 노인은 산소 마스크를 끼고 생을 다 연소한듯한 표정으로 병원에 누워 체념한듯 죽음을 기다리고 있더라, 우리시절의 그 삼룡이 아저씨는 그렇게 바보스러운 연기로 세상을 마음껏 웃껴주다가 인생극장에서 불현듯 떠나갔다. 물론 이 주만에 바보연기로 대스타가 되어 국회의원까지 지내본, 본명은 정주일이었다는 그양반조차도 폐암말기로 이미 유명을 달리했음이다. 이처럼 우리시대를 늘 웃껴주던 이들을 지금도 추억해보면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는 것이다.
진주라 천리길 달포전에 청곡사로 부임한 성공스님을 장안의 유명 희극인 김종국씨와 방문했다. 어쩌면 고 이주일선생의 흉내를 그토록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이가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그저 잘난사람들 천지인 이 사바세계에서 좀 모자란듯 사는 것도 지혜라며, 살아 남아있는 자들에게 일깨워주려했던, 그 '바보 연기의 요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모난 돌은 정을 맞는다" 라고 한다.
애초 잘난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불초소생, 이제야 철좀 들어 언제나 바보처럼 살아 보려고 진심 노력을 한다. '잘난척을 해 보아야 얻을 것 보다는 잃을 것이 많다'는 '불변의 진리'를 이제서 뒤늦게야 깨우친 덕분이다.
30여년 전 법보종찰 해인사 산내암자 지족암의 선방에서 만나뵌 어느 선승께서 이르시길, "산중에 소나무가 잘나고 반듯하면 석가래나 기둥으로 잘려나가 집을짓는 목재가 되지만, 저 산중을 오래도록 지키는 굽은 나무가 되어보라" 했던 그토록 생생하고 절절한 말씀, 이제서야 가슴에 와닿는 이유는 또 무엇이람.
탄탄스님 (전 용인대 객원교수, 현 동국대 출강) han378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