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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안 칼럼]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기사승인 2022.06.27  06: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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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안 한국방송공사 부산방송총국장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Ⅰ

“전하! 판중추 신 정원용 봉영차로 왔습니다.”
총각은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였다.
어려서 천자문을 좀 배우다가 가세가 가난하기 때문에 학문도 중지하고 아직껏 초동으로 지낸 총각은 오늘의 일이 무슨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 저…… 나…… 소인은…….”
무엇이라 대답은 했지만 아무도 알아들은 사람이 없었다. 짐작하건대 총각 자신도 몰랐을 것이었다. (김동인, 운현궁의 봄)

지게발이 임금, 강화 도령이라 불린 철종과 봉영사 정원용의 대면 장면이다. 군왕의 훈련은커녕 후사를 잇기 위한 아무런 연고나 배경이 없는 지게발이는 세도가 안동 김씨에 의해 왕으로 택정된 것이다. 철종은 재위 14년간 세도정치에 갇혀 허수아비 군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자격지심으로 인한 향수병과 무분별한 생활 끝에 33살의 나이로 단명했다. 조선말 시대의 모순 속에서 임금으로 신분 상승한 초동의 극적인 삶은 영화(사진은 1963년 신상옥 감독, 신영균 최은희 주연의 ‘강화도령’ 포스터), 드라마, 라디오 연속극, 소설, 야사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철종은 보위 내내 안동 김씨에 정사를 맡기고 주색에 빠진 채 강화에서 자유로웠던 생활을 그리워하다 끝내 강화를 밟아보지 못하고 죽는다.

“살아서 강화섬의 바닷가를 걸어 보고 싶소. 양순의 무덤도 보아야 하지를 않겠소. 나는 지난 14년 동안 강화섬의 파도 소리를 단 한 번도 잊은 일이 없어요.”
“전하….”
“잠자리에 들면…, 강화도의 파도 소리가 내 귓전을 울렸습니다. 임금이 아니었다면…, 법도라는 것만 없었어도… 나는 대궐의 담장을 뛰어넘어서라도 강화섬으로 달려갔을 거예요.” (신봉승, 임금님의 첫사랑)

“끝난 뒤엔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 2020.1.14. 신년 기자회견)

기자회견을 들으며 내 귀를 의심했다. 권력의지가 없는 순수함인가, 아니면 무책임한 딜레탕티즘의 표현인가. 딜레탕티즘은 1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 독일에서 벌어진 반전평화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등 이상 사회를 시험하려는 각종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을 말한다(2017.3.11. 필자, KBS 뉴스해설 ‘대통령 탄핵과 윤리적 역설’). 이 언급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는 ‘망국의 군주가 아니라면 나오기 힘든 소리’라는 김순덕의 칼럼을 참고해도 좋을 것같다. (2020.12.10. 동아일보, ‘文, 잊혀진 대통령으로 남을 것 같은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443342

대통령, 정치인 문재인의 정치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초지일관이라는 측근들의 평가다(2020.6.12. 서울신문, ‘열린 사저 꿈꿨던 盧… 현실 정치 끊고픈 文’). 문재인이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생각은 그의 공적인 생활 내내 그를 규정하였으며 2011년 그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는 그런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공공연하게 그리고 자주 등장한다.

‘2003.1.13.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민정수석비서관을 맡아달라고 하자 1주일 고민하다가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는 것과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2002년 지방선거 때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라는 강한 압박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청와대로 동행)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내 의사와 무관한 징발론이 당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민정수석을 하는 것만 해도 원래 내 삶에서 너무 벗어난 것 같아 벅찼던 터였다. 더 나아가 정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건강을 핑계로 사의를 표명했다.’ (자유인)
‘2006년 5월 여러 달 전부터 표명했던 사의가 지방선거를 도우라는 뜻으로 수용됐다. 부산에 가서 지방선거를 도우려다 구설수에 휘말려 크게 혼이 났다. 내가 평생 동안 제일 많이 욕먹은 일이어서, 그 일은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다. 정치가 더 싫고 무서워졌다.’ (사임)
‘퇴임 이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산 근처 시골로 들어가고 싶었다.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퇴임)
‘참여정부가 끝났을 때 나는 드디어 해방이라고 외쳤다.’ (다시 변호사로 돌아오다)

錦繡江山春似海 (금수강산춘사해) 금수강산에 봄은 바다처럼 펼쳐지고
鶯花巷陌日中天 (앵화항맥일중천) 앵두꽃은 길거리에 가득한데 해는 중천에 걸렸네!

“후일에 가객이 철종 재위 14년간의 태평상을 노래하고 가로되, 이는 태평상을 노래한 것이라기보다도 아무 정치도 없이 무사히 지나간 양을 비웃었다는 편이 옳을는지도 모른다. …… 후일에 사가가 이 임금을 가리켜 용주(庸主)라 한 것은, 결과에 있어서는 그렇게 비평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본질에 있어서 그이가 그렇듯 용주이던 것이 아니고 환경이 그이로 하여금 그렇듯 어릿어릿하게 한 것이었다.” (김동인, 운현궁의 봄)

김동인은 철종의 용열함을 본질에서 그런 것이 아니요, 환경 때문이라고 역성을 들었지만 나는 문재인을 이 시대 혼군(昏君), 민군(愍君), 또 다른 민군(泯君)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게발이 용주였다. 왜? (계속)

댓글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던 문재인이 페이스북을 통해(2022.6.9.) 어느 교수의 책을 추천하며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사적 소통의 수준을 넘었다. 윤석열 정부의 대중 외교 정책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평가이다.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특별히 주목을 끄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2022.4.25. 고별 기자간담회)고 했던 그다. 양산으로 낙향할 때 동행한 전직 비서관 3명이 모두 메시지와 연설, 공보 담당자들이었다는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 도대체 앞뒤 말이 일치하지 않으니 헷갈린다. 두 마음일까?

1963년 강화도령 포스터
2020.12.10. 동아일보 ‘문, 잊혀진 대통령으로 남을 것 같은가’
2020.6.12. 서울신문 ‘열린 사저 꿈꿨던 盧… 현실 정치 끊고픈 文’
2022.4.26. 한겨레신문 ‘현실정치 관여하지 않고 살겠다’
2022.6.11. 한국일보 ‘퇴임 후 잊혀진 삶... 文의 존재감 여전’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Ⅱ

2002년 지방선거에서 문재인은 부산시장 후보 출마를 거칠게(?) 거절했던 것같다. 노무현의 측근이었던 염동연은 한 인터뷰에서 이 과정을 상세히 인터뷰하면서 문재인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2015.6.24. 정경조선, ‘원조 친노’ 염동연, ”노무현 정권의 첫 민정수석 문재인, 그게 제일 문제였다". 2004.2.9. 서울경제, ‘출마 거부 문재인 등 4인에게 직격탄’) 염동연은 노무현 당선자 시절 문재인이 불쑥 비밀 인사위에 참석하자 문재인과 함께 그런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두 번의 회의만 연 뒤 인사위를 해산했다고 밝혔다. 문재인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도 그 언저리에 갈 일이 없다’고 했던 사람이라며 그의 비정치성향 속에 숨은 비열한 기회주의를 강하게 비난했다(염동연, 둘이서 바꿔봅시다).

http://pub.chosun.com/client/article/viw.asp?cate=C01&nNewsNumb=20150617694

그렇게 정치를 멀리하던 문재인이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 노무현 가신 그룹과 이후 86그룹(어떤 시각에서는 주사파운동권과 그 대부인 이해찬 등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민단체 특히 참여연대, 민노총, 전교조 세력의 연합에 의한 선택과 지원이었다. 이들 그룹은 노무현 자살 이후 절치부심하면서 문재인을 끊임없이 정치로 소환했다. 그 보증은 문재인에게 안정적인 위상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주는 환경 조성이었다.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지는 당 해체와 통합 과정을 통해 반대 세력인 ‘혁신과 통합’을 몰아내고 문재인의 위상과 이미지를 만들어 주었다. 문은 여기에 올라탔다.

문재인은 20대 대통령 퇴임 마지막 주 국정 수행 지지율 45%를 기록하며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로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됐다(2022.5.6. 한국갤럽데일리오피니언). 문은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최고인 84%를 기록하고 이런 문 지지율은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압승의 동력이 되었다. 이런 지지율을 바탕으로 문의 이미지 프레임은 조선 역대 왕을 소환해 강고해진다.

2020년 총선 직후 민주당 이광재 당선인은 문을 노무현과 함께 ‘태종 같다.’고 비유하며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2020.5.8. 노무현 11주기 특별유튜브방송). 강민석 대변인은 문에 대해 ‘지난 3년간 태종의 모습이 있었다’고 칭송했다(2020.5.11. 연합뉴스TV 인터뷰). 고민정 의원은 문을 정조에 비유하며 ‘과거 노론은 개혁 군주인 정조의 모든 개혁법안에 끊임없이 저항했다’고(2020.12.10. 고민정 페이스북).

문재인을 태종에 비유했을 때 떠오른 즉각적인 의문은 문이 자신을 옹립시키고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세력과 측근, 이른바 자기 편을 제거하고 취임사로부터 시작된 통합이란 레토릭을 실제로 구현하려는 의지라는 것인지였다. 태종 리더십의 핵심은 권력 이양을 앞두고 외척과 권신을 제거하여 세종의 국가 경영에 사적 요소가 끼어들 여지를 차단시켰다는 것이다(2020.5.18. 조선일보, 박현모 인터뷰 ‘제 편만 쓰는 文, 인재 두루 발탁한 태종 닯았다니…’).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끊임없이 상대를 향해 기만과 독단을 활용하였다. 문재인의 5년간 내로남불, 우리편 챙기기의 봉건적 퇴영과 적폐 정의의 도덕적 우월성은 19세기 정조를 압도한다.

철종 시대 조선 내부는 세도정치에 의한 관료사회의 수탈과 민란, 외부에서는 새로운 조류와 사상, 외세가 봉건왕조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위협은 곧 백성들의 삶의 위기, 사직의 위기였다. 사직을 가장 크게 위협한 부조리는 삼정의 문란이었고 이 가운데 환곡(還穀)의 폐단이었다. 이 때문에 1862년에는 전국 70여 곳에서 민란(임술민란)이 일어났다. 철종은 세도정치에 수습을 맡겨 놓은 뒤 환곡 폐지와 개선 사이의 갈등을 방치하면서 세월을 허송하였다.

문재인이 퇴임 직전 지지율 45%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까지 내 편의 뜻을 거스르지 않은 편가르기 기술이었다. 내우외환과 사분오열을 방치하거나 조장함으로써 내 편의 지지만을 확고히 하는 기술의 결과이다(2021.2.27. 조선일보 노정태 칼럼, ‘文 대통령은 철종인가, 고종인가’). 이런 국민 편가르기는 마르크스식 경제계급, 세대, 남녀, 남북문제 – 지역, 직업 갈등 조장을 말하는 평론도 있다 - 등에서 5년 내내 이뤄진다. 문은 내 편의 뜻을 받들면서 오직 지지를 위한 산술적 손익을 계산하고, 한편으로 맞대응하기 불편한 이슈와 구호를 – 예컨대 평화, 분배, 관용, 포용 – 선점하여 반대를 옭죄는 프레임을 활용했다.

문재인의 내 편, 네 편 의식은 듣기 좋은 레토릭 뒤에 숨어 임기 마지막까지 발휘된다. ‘저쪽의 문제보다 이쪽의 작은 문제들을 훨씬 부각하는 이중잣대가 문제이다’ ‘검수완박 의견을 말하지 않겠다’ ‘김정은 지금은 평가하지 않겠다’ (2022.4.25., 4.26. jTBC 퇴임 대담방송) (계속)

2020.5.18. 조선일보, 박현모 인터뷰 ‘제 편만 쓰는 文, 인재 두루 발탁한 태종 닯았다니…’
2021.2.27. 조선일보, 노정태 칼럼 ‘文 대통령은 철종인가, 고종인가’
2022.3.12. 조선일보, 서민 칼럼 ‘지역‧직업‧성별까지 둘로 쪼갠… 文정권 5년 갈라치기 종말’
2022.4.27. 경향신문, ‘문 대통령, 윤 당선인 집무실 이전 개인적으로 마땅치 않게 생각’
2022.4.28. 중앙일보, ‘부동산‧조국사태…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문 대통령 인식’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Ⅲ

역대 대통령이 여론 퇴조 국면에서 때로 지지층에 등을 돌리거나 최소한 등을 돌리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문은 임기 내내 지지층만을 바라보았고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 평론가는 임기 말 지지율의 비결로 ‘집토끼 지키기’를 들었다(2022년 신동아 3월호. 강준만, ‘개그 원고로 끝나버린 취임사’). 

국민을 98%와 2%로 가르기. 사람 머릿수를 과세 기준으로 하는 상위 2% 자산보유자에게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는 안(2021.7.6. 민주당 특위)으로 가르고, 세대 간, 남녀 간 갈등은 페미니즘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2017.2.16. 대통령후보 토론회)으로 비롯해 20대 남녀 갈등의 최고조를 이룬다. 여성 지지율이 80%를 넘던 문의 임기 중 남녀 정책에 관해 20대 남성 56% 부정적, 20대 여성 72% 긍정적이라는 인식의 차이(2022.4.15.~4.20. 조선일보·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 젠더의식조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 결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북 평화라는 프레임은 국민에게 허위의식을 심어주었고 문재인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신 보증해주다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할 시간만 벌어주었다. 남은 것은 ICBM과 SRBM 무더기 도발(2022.5.25.)과 문 정부 출범 직후 수소탄급 6차 핵실험(2017.9.3.) 이후 소형화, 다탄두 기술을 보강한 7차 핵실험 준비(2022.5.13. Voice of America, 2022.6.6. IAEA)까지 ‘김정은은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결단력 있는 지도자’(2021.6.9. 美 타임지 인터뷰)라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사이 평화는 공허한 수사였음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군에 피살, 소각 유기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2020.9.22.)에는 김정은의 유감 서신에 대해 ‘생명 존중하는 국방위원장’이라고 둔갑시키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2020.6.16.) 등 도발에는 주사파와 김정은의 눈치만 보며 침묵했다.

중국의 대한반도 조기 경보레이더 설치(2022.4.21.)에는 아무 말 못하고 성주의 THADD는 임기 5년 내내 방치했다. 검찰 장악을 위해 국민의 반일정서를 격동하는 죽창가, 토착 왜구를 외치며 대일 경제 전쟁을 벌이고, 중국에는 만절필동(萬折必東, 2017.12.5. 신임 중국대사)의 굴종으로 일관했다.

반면 ‘우리 편’에는 지속적으로 우리끼리의 사인을 꺼내 든다. 조국 비리 의혹으로 서초동을 반쪽으로 만들더니 조국을 경질하면서 ‘지금까지 겪은 고초만으로도 마음의 빚을 졌다’(2020.1.14. 신년기자회견)며 우군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위안부 피해자 회계 1억여 원을 횡령한 윤미향 의원(2020.5.7.)은 의원직을 유지한 채 2년이 넘도록 1심 재판의 보호를 받고, 9억 원의 뇌물을 받고 2년을 복역한 친노 대모 한명숙 사건을 증거조작으로 몰아 검찰 수사를 수사하고(2021.3.5.) 사면복권(2021.12.24.)으로 특혜를 베푼다. 5.18 기념식 때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되뇌고, 세월호 조사와 수사는 총 9차례 중 문 정부에서만 4차례(2021.8.10. 특검 수사 무혐의, 2022.6.9. 사회적참사특조위 종료)를 진행하고도 ‘아직도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다’(2022.4.16. 페이스북)고 아쉬움을 남긴다.

문재인 5년 내내 국민 편가르기와 지지층 바라보기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실패(?)에서 배운 교훈으로 보인다. 문은 윤석열 당선인 접견, 퇴임 연설 등에서 ‘국민 통합’을 얘기했지만 내심은 여전히 우리 편을 찾고 있었다(2022.5.2. 동아일보 박제균 칼럼, ‘대통령 아닌 半통령으로 기억될 문’). 운명을 보면 참여정부 실패가 ‘우리 편’, ‘우리 진영’에 대한 배신으로 인한 분열 때문이라고 곳곳에서 속내를 드러낸다. 

‘다음 시대를 함께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모아야 한다’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기를)
‘우리는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협치)를 꿈꿨다’ (시민사회수석)
‘우리 진영의 분열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그렇게 안타깝게 흘러갔다’ (정치라는 것)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비극의 시작)

문은 참여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한미FTA,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대연정 제안 등 노무현의 후퇴가 ‘우리 편’의 등돌리기로 돌아왔고 분열과 정권재창출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되뇐다.

‘시민사회 진영, 노동운동 진영, 나아가 진보·개혁 진영 전체가 함께 해야 한다’ ‘진보.개혁진영 전체의 힘 모으기에 실패하면 어느 민주개혁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다’ ‘시민사회진영도 대부분 관심이 없었고 지원해 주지 않았다’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참여정부의 대응에는 아쉬움이 많다’ ‘정부와 시민사회진영이 공감대를 형성해 연대의 토대로 삼아야 집권 후에도 분열하지 않을 수 있다’ (길을 돌아보다) (계속)

2021.8.20. 한겨레신문, ‘여야 합심해 종부세 후퇴, 이러고도 집값 안정 바라나’
2017.2.17. 한겨레신문, ‘문재인, 페미니스트 대통령 되겠다’
2022.5.6. 조선일보, ‘尹 찍은 이대남 49%, 李 택한 이대녀 38%’
2022.6.2. 중앙일보, ‘이대남은 국민의힘, 이대녀는 민주당...’
2021.6.25. 한겨레신문, ‘지금의 평화는 언제든 흔들려’
2018.4.28. 조선일보 사진 ‘손잡고 선을 넘다’
2020.6.17. 동아일보, ‘北, 남북화해 상징 폭파시켰다’
2022.2.11. 조선일보, ‘중국 영원한 질곡’
2020.5.8. 조선일보,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 수요집회 참석안해, 윤미향 사욕 차리려...’
2021.12.25. 한겨레신문, ‘화합명분 맞춘 듯...여권‧진    보 인사도 끼워넣기’
2022.5.2. 동아일보 박제균 칼럼 ‘대통령 아닌 半통령으로 기억될 文’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Ⅳ

민노총, 전교조, 각종 시민사회단체, 민변, 참여연대 같은 ‘우리’의 역량을 모았어야 한다는 회고를 보면 그가 윤석열 당선인에게 주문하거나 퇴임사에서 말한 ‘국민’ 통합은 ‘우리 편’의 통합이었던 것이다. 언어의 재정의를 통한 의식 마비의 끝을 보게 된다.

정권을 넘긴 노무현과 달리 5년 단임으로 정권을 빼앗긴 문은 정권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선의 패배도 없다. ‘나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입도 뻥긋 못했는데 선거에 졌다고 말하는 건 문제다’(jTBC 대담방송). 운명에서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정권 재창출에서 참담한 실패를 했다. 진보진영 전체가 한꺼번에 추락했다’ (퇴임)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기억은 그를 배반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담담한 것 같았지만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분위기는 어두웠다’(2022.5.10. 조선일보).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를 이어 민주당 10년을 집권하고 야당에 정권을 넘겨줬으나 문은 10년 만에 찾은 정권을 5년의 단명으로 야당에 넘겨줬다는 낭패감을 스스로 속일 수 없었으리라. 노무현 8주기 추도식에서 쟁권을 재창출한 성공한 대통령으로 돌아오겠다고 한 추도사를 잊을 수 없었으리라(2017.5.23.). 더구나 후임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자신과 맞서다가 야당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니 무슨 논리와 변명을 덧붙이겠는가.

‘검찰총장을 탄압해 대선 후보로 키워주지 않았는가?’
‘다른 출신이면 괜찮은 건가요? 검찰총장이라는 게 별로 좋은 조건은 아니죠.’ (jTBC 대담방송)

2021년 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5천 달러(2022.3.3. 한국은행)로 성장했고,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2022.3.3. 세계은행)로 올라섰다. 문의 수사대로 지난 5년 동안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2022.5.9. 퇴임연설)가 됐는지는 남겨 두자. 그저 지난 5년간 삶의 지표를 보자.

문재인 정부는 대선 국면 이전까지 세제, 공급 관련 집값, 전세값 안정을 위한 부동산 정책(2021.2.5. 매일경제, ‘LH주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면제한다’을 25번 내놓았다. 그 결과 2017년 전국 아파트 평균 가격 3억 2천만 원이던 것이 전세값만 3억 4천만 원(2022.5.9. KB국민은행)으로 5년 전 아파트값보다 더 비싸졌다. 소득불균등은 나아졌을까. 2021년 4분기 상위 20%와 하위 20%의 비율로 보는 소득격차는 4년 전의 4.8배 수준에서 5.23배로(2022.4.5. 신한은행 금융생활보고서) 커졌고, 처분가능소득 배율은 전년 동기 5.03에서 5.59로 벌어졌다. 상대적 빈곤이 심화됐다는 얘기다. 청년 실업률은 2017년 9.8%에서 7.8%로 떨어졌지만 비정규직의 증가와 정부 지원 공공부문 단기 알바에 의한 착시이다. 그래서 청년 체감실업률은 여전히 20.1%에 이른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투자는 유보하고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모면하기 위한 무계획 현금 풀기의 결과이다. 

올들어 3월, 4월 취업자 수는 83만 명, 86만 명 늘었지만 절반이 정부 재정이 만든 노인 알바 자리다(통계청 3월, 4월 고용동향). 새 정부의 기재부도 ‘정부가 만든 직접 일자리와 고령 취업자 비중이 너무 높다며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기존 정책을 공박했다(2022.5.12.). 상황이 이런데도 문은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쳤고 일자리도 줄였다는 식의 평가는 전혀 잘못되었다. 5년을 보면 고용은 크게 늘었고 우리 경제는 훨씬 성장했고 … 분배도 대단히 개선되었다.”(jTBC 대담방송)며 딴전을 부린다.

출산율은 2017년 1.23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2022.3.17. 통계청) OECD 최하위였다. 문 정부 5년 내내 출산율은 반등없이 추락했고 2021년 한 해만 저출산 대응 예산 46조 원을 투입했으나(2022.4.19. 중앙일보) 1회성 지원금으로 소모했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2/04/310351/

문 정부에서 국가채무는 408조 원이 늘어 2022년 말에는 1,064조 원의 빚을 남겨준다(2022년 예산안). 국내총생산의 51%에 해당한다. 문 정부 채무 증가액은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의 351조 원보다 크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업, 소득 분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세금으로 알바직 일자리를 양산하고, 13만 명의 공무원을 증원하고 복지·고용 지원금을 통해 세금을 동원한 결과이다. 문제는 향후에도 채무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2022.5.24. 중앙일보). 이러는 사이에 기업과 가계 빚 상환 부담은 OECD에서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2022.2.24. IIF 국제금융협회). 저출산에 늘어나는 국가 채무는 현재의 삶이 아니라 미래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은 2030년 이후 0.8%로 떨어져 OECD 최하위가 될 전망이다(2022.3.24. 한국경제연구원). (계속)

2022.5.10. 경향신문, ‘성과 계승하기를’
2022.4.6. 매일경제, ‘소득격차 5.23배’
2022.4.14. 서울경제, ‘취업자 83만 명 늘어’
2022.4.19. 중앙일보, ‘2050년에 세계 최고령국가’
2022.5.24., 중앙일보, ‘무너진 재정기강’
2022.4.20. 중앙일보, ‘물가 1~2년 더 오를 것’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Ⅴ-끝

이런 상황이 예견됨에도 지난 5년 문재인 정부는 국가채무를 통제할 제도는 외면하고 돈풀기에 급급했다. 대규모 지출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지역 형평을 내세워 100조 가까운 사업을 면제했고 부산 가덕도 신공항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예타를 면제하는(2021.2.16. 가덕도신공항건설촉진특별법) 돈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에 2055년 고갈되는 국민연금 논의는 외면하고, 기업 노동 정책은 손 놓고, 미래 산업 발굴은 헤매었다. 그러는 사이 문재인 정부 5년 세월은 안전하고 평화롭고 조용하고 살만한 태평성대가 도래한 듯한 환상을 가져왔다.

고물가, 금리, 환율과 저소비, 투자, 생산(2022.4.30. 매일경제, ‘투자‧소비 고꾸라져 S의 그림자’. 2022.6.4. 조선일보, ‘트리플 상승‧트리플 하락’)이라는 현실이 진실의 순간처럼 다가왔다. 문재인 5년 퍼주기는 사회의 역동성과 탄력성을 망가뜨리고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남게 됐다. 

탈핵 이념을 실현한 탈원전으로 에너지는 불안정해지고(2022.6.3. 동아일보 ‘전력수요, 지난달 역대 최고… 올여름 전력수급 비상’), 4대강 보의 파괴와 상시 개방은 생존 환경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2022.6.9. 뉴시스 사진 ‘가뭄 피해 줄이자...충북도 합동 TF 가동’).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수사 기능을 봉쇄한 방탄 입법(2022.4.30. 검찰청법 개정)을 임기 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야반도주하듯 통과시키고 양산으로 떠났다. 

문재인은 태종인가, 세종인가, 정조인가, 철종인가, 고종인가. 문재인 대통령을 고종과 비교하여 문의 판단력 이념 몰입, 국가역량 훼손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지만(2019.6.28. 조선일보 박정훈 칼럼, ‘문 대통령은 고종의 길을 가려 하는가’), 필자는 문의 ‘잊혀진 대통령’에서 지난 5년의 희미한 그림자가 회계보고 하듯 명확해지고 지게발이 철종과 그 시대가 다시 어른거림을 뚜렷이 보게 된다. 5년 단임이기에 망정이지 이런 정권이 계속됐을 상상은 끔찍하기조차 하다. 정치 지형은 169석의 민주당을 남기고 6.1 지방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부 당시로 회귀했다. 문재인의 국내 정치 유산이다.

錦繡江山春似海 (금수강산춘사해)
鶯花巷陌日中天 (앵화항맥일중천)

“후일에 가객이 철종 재위 14년간의 태평상을 노래하고 가로되, 이는 태평상을 노래한 것이라기보다도 아무 정치도 없이 무사히 지나간 양을 비웃었다는 편이 옳을는지도 모른다. …… 후일에 사가가 이 임금을 가리켜 용주(庸主)라 한 것은, 결과에 있어서는 그렇게 비평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본질에 있어서 그이가 그렇듯 용주이던 것이 아니고 환경이 그이로 하여금 그렇듯 어릿어릿하게 한 것이었다.” (김동인, 운현궁의 봄)

김동인은 철종의 용열함을 본질에서 그런 것이 아니요, 환경 때문이라고 역성을 들었지만 나는 문재인을 이 시대 혼군(昏君), 민군(愍君), 또 다른 민군(泯君)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게발이 용주였다. 끝.

#문재인 #철종 #태종 #지게발이 #강화도령

2022.6.3. 동아일보 ‘전력수요 지난달 역대 최고... 올여름 전력수급 비상’
2022.6.9. 뉴시스 사진 ‘가뭄 피해 줄이자... 충북도 합동 TF 가동’
2022.6.6. 경향신문 ‘저수지는 한 달째 바닥.. 비 와도 타들어가는 농심’
2022.5.4. 중앙일보 ‘결국 대통령까지 꼼수’
2019.6.28. 조선일보 박정훈 칼럼 ‘문 대통령은 고종의 길을 가려는가’
2022.6.3. 한겨레신문 그래픽 ‘151대53→63대145...성적표 맞바꾼 양당’
2022.6.3. 동아일보 ‘국힘, 국회의원 보선도 승...5석 더해 114석’

[이준안 칼럼]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Ⅰ

“전하! 판중추 신 정원용 봉영차로 왔습니다.”
총각은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였다.
어려서 천자문을 좀 배우다가 가세가 가난하기 때문에 학문도 중지하고 아직껏 초동으로 지낸 총각은 오늘의 일이 무슨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네? 저…… 나…… 소인은…….”
무엇이라 대답은 했지만 아무도 알아들은 사람이 없었다. 짐작하건대 총각 자신도 몰랐을 것이었다. (김동인, 운현궁의 봄)

지게발이 임금, 강화 도령이라 불린 철종과 봉영사 정원용의 대면 장면이다. 군왕의 훈련은커녕 후사를 잇기 위한 아무런 연고나 배경이 없는 지게발이는 세도가 안동 김씨에 의해 왕으로 택정된 것이다. 철종은 재위 14년간 세도정치에 갇혀 허수아비 군왕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자격지심으로 인한 향수병과 무분별한 생활 끝에 33살의 나이로 단명했다. 조선말 시대의 모순 속에서 임금으로 신분 상승한 초동의 극적인 삶은 영화(사진은 1963년 신상옥 감독, 신영균 최은희 주연의 ‘강화도령’ 포스터), 드라마, 라디오 연속극, 소설, 야사의 소재로 자주 등장했다. 철종은 보위 내내 안동 김씨에 정사를 맡기고 주색에 빠진 채 강화에서 자유로웠던 생활을 그리워하다 끝내 강화를 밟아보지 못하고 죽는다.

“살아서 강화섬의 바닷가를 걸어 보고 싶소. 양순의 무덤도 보아야 하지를 않겠소. 나는 지난 14년 동안 강화섬의 파도 소리를 단 한 번도 잊은 일이 없어요.”
“전하….”
“잠자리에 들면…, 강화도의 파도 소리가 내 귓전을 울렸습니다. 임금이 아니었다면…, 법도라는 것만 없었어도… 나는 대궐의 담장을 뛰어넘어서라도 강화섬으로 달려갔을 거예요.” (신봉승, 임금님의 첫사랑)

“끝난 뒤엔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 2020.1.14. 신년 기자회견)

기자회견을 들으며 내 귀를 의심했다. 권력의지가 없는 순수함인가, 아니면 무책임한 딜레탕티즘의 표현인가. 딜레탕티즘은 1차 세계 대전 패전 직후 독일에서 벌어진 반전평화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등 이상 사회를 시험하려는 각종 아마추어리즘과 포퓰리즘을 말한다(2017.3.11. 필자, KBS 뉴스해설 ‘대통령 탄핵과 윤리적 역설’). 이 언급에 대한 평가와 관련해서는 ‘망국의 군주가 아니라면 나오기 힘든 소리’라는 김순덕의 칼럼을 참고해도 좋을 것같다. (2020.12.10. 동아일보, ‘文, 잊혀진 대통령으로 남을 것 같은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443342

대통령, 정치인 문재인의 정치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초지일관이라는 측근들의 평가다(2020.6.12. 서울신문, ‘열린 사저 꿈꿨던 盧… 현실 정치 끊고픈 文’). 문재인이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는 생각은 그의 공적인 생활 내내 그를 규정하였으며 2011년 그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는 그런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공공연하게 그리고 자주 등장한다.

‘2003.1.13.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민정수석비서관을 맡아달라고 하자 1주일 고민하다가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는 것과 정치하라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2002년 지방선거 때 부산시장 후보로 나서라는 강한 압박을 강하게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청와대로 동행)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내 의사와 무관한 징발론이 당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민정수석을 하는 것만 해도 원래 내 삶에서 너무 벗어난 것 같아 벅찼던 터였다. 더 나아가 정치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건강을 핑계로 사의를 표명했다.’ (자유인)
‘2006년 5월 여러 달 전부터 표명했던 사의가 지방선거를 도우라는 뜻으로 수용됐다. 부산에 가서 지방선거를 도우려다 구설수에 휘말려 크게 혼이 났다. 내가 평생 동안 제일 많이 욕먹은 일이어서, 그 일은 마음속에 상처로 남아 있다. 정치가 더 싫고 무서워졌다.’ (사임)
‘퇴임 이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부산 근처 시골로 들어가고 싶었다.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퇴임)
‘참여정부가 끝났을 때 나는 드디어 해방이라고 외쳤다.’ (다시 변호사로 돌아오다)

錦繡江山春似海 (금수강산춘사해) 금수강산에 봄은 바다처럼 펼쳐지고
鶯花巷陌日中天 (앵화항맥일중천) 앵두꽃은 길거리에 가득한데 해는 중천에 걸렸네!

“후일에 가객이 철종 재위 14년간의 태평상을 노래하고 가로되, 이는 태평상을 노래한 것이라기보다도 아무 정치도 없이 무사히 지나간 양을 비웃었다는 편이 옳을는지도 모른다. …… 후일에 사가가 이 임금을 가리켜 용주(庸主)라 한 것은, 결과에 있어서는 그렇게 비평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본질에 있어서 그이가 그렇듯 용주이던 것이 아니고 환경이 그이로 하여금 그렇듯 어릿어릿하게 한 것이었다.” (김동인, 운현궁의 봄)

김동인은 철종의 용열함을 본질에서 그런 것이 아니요, 환경 때문이라고 역성을 들었지만 나는 문재인을 이 시대 혼군(昏君), 민군(愍君), 또 다른 민군(泯君)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게발이 용주였다. 왜? (계속)

댓글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던 문재인이 페이스북을 통해(2022.6.9.) 어느 교수의 책을 추천하며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사적 소통의 수준을 넘었다. 윤석열 정부의 대중 외교 정책 우회적으로 비판했다는 평가이다.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특별히 주목을 끄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2022.4.25. 고별 기자간담회)고 했던 그다. 양산으로 낙향할 때 동행한 전직 비서관 3명이 모두 메시지와 연설, 공보 담당자들이었다는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이상할 것도 없지만 도대체 앞뒤 말이 일치하지 않으니 헷갈린다. 두 마음일까?

1963년 강화도령 포스터
2020.12.10. 동아일보 ‘문, 잊혀진 대통령으로 남을 것 같은가’
2020.6.12. 서울신문 ‘열린 사저 꿈꿨던 盧… 현실 정치 끊고픈 文’
2022.4.26. 한겨레신문 ‘현실정치 관여하지 않고 살겠다’
2022.6.11. 한국일보 ‘퇴임 후 잊혀진 삶... 文의 존재감 여전’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Ⅱ

2002년 지방선거에서 문재인은 부산시장 후보 출마를 거칠게(?) 거절했던 것같다. 노무현의 측근이었던 염동연은 한 인터뷰에서 이 과정을 상세히 인터뷰하면서 문재인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2015.6.24. 정경조선, ‘원조 친노’ 염동연, ”노무현 정권의 첫 민정수석 문재인, 그게 제일 문제였다". 2004.2.9. 서울경제, ‘출마 거부 문재인 등 4인에게 직격탄’) 염동연은 노무현 당선자 시절 문재인이 불쑥 비밀 인사위에 참석하자 문재인과 함께 그런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두 번의 회의만 연 뒤 인사위를 해산했다고 밝혔다. 문재인이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도 그 언저리에 갈 일이 없다’고 했던 사람이라며 그의 비정치성향 속에 숨은 비열한 기회주의를 강하게 비난했다(염동연, 둘이서 바꿔봅시다).

http://pub.chosun.com/client/article/viw.asp?cate=C01&nNewsNumb=20150617694

그렇게 정치를 멀리하던 문재인이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본인의 의사가 아니라 노무현 가신 그룹과 이후 86그룹(어떤 시각에서는 주사파운동권과 그 대부인 이해찬 등을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민단체 특히 참여연대, 민노총, 전교조 세력의 연합에 의한 선택과 지원이었다. 이들 그룹은 노무현 자살 이후 절치부심하면서 문재인을 끊임없이 정치로 소환했다. 그 보증은 문재인에게 안정적인 위상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주는 환경 조성이었다.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으로 이어지는 당 해체와 통합 과정을 통해 반대 세력인 ‘혁신과 통합’을 몰아내고 문재인의 위상과 이미지를 만들어 주었다. 문은 여기에 올라탔다.

문재인은 20대 대통령 퇴임 마지막 주 국정 수행 지지율 45%를 기록하며 민주화 이후 가장 높은 지지율로 임기를 마친 대통령이 됐다(2022.5.6. 한국갤럽데일리오피니언). 문은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최고인 84%를 기록하고 이런 문 지지율은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압승의 동력이 되었다. 이런 지지율을 바탕으로 문의 이미지 프레임은 조선 역대 왕을 소환해 강고해진다.

2020년 총선 직후 민주당 이광재 당선인은 문을 노무현과 함께 ‘태종 같다.’고 비유하며 ‘이제 세종의 시대가 올 때가 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2020.5.8. 노무현 11주기 특별유튜브방송). 강민석 대변인은 문에 대해 ‘지난 3년간 태종의 모습이 있었다’고 칭송했다(2020.5.11. 연합뉴스TV 인터뷰). 고민정 의원은 문을 정조에 비유하며 ‘과거 노론은 개혁 군주인 정조의 모든 개혁법안에 끊임없이 저항했다’고(2020.12.10. 고민정 페이스북).

문재인을 태종에 비유했을 때 떠오른 즉각적인 의문은 문이 자신을 옹립시키고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세력과 측근, 이른바 자기 편을 제거하고 취임사로부터 시작된 통합이란 레토릭을 실제로 구현하려는 의지라는 것인지였다. 태종 리더십의 핵심은 권력 이양을 앞두고 외척과 권신을 제거하여 세종의 국가 경영에 사적 요소가 끼어들 여지를 차단시켰다는 것이다(2020.5.18. 조선일보, 박현모 인터뷰 ‘제 편만 쓰는 文, 인재 두루 발탁한 태종 닯았다니…’).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끊임없이 상대를 향해 기만과 독단을 활용하였다. 문재인의 5년간 내로남불, 우리편 챙기기의 봉건적 퇴영과 적폐 정의의 도덕적 우월성은 19세기 정조를 압도한다.

철종 시대 조선 내부는 세도정치에 의한 관료사회의 수탈과 민란, 외부에서는 새로운 조류와 사상, 외세가 봉건왕조를 위협하고 있었다. 이 위협은 곧 백성들의 삶의 위기, 사직의 위기였다. 사직을 가장 크게 위협한 부조리는 삼정의 문란이었고 이 가운데 환곡(還穀)의 폐단이었다. 이 때문에 1862년에는 전국 70여 곳에서 민란(임술민란)이 일어났다. 철종은 세도정치에 수습을 맡겨 놓은 뒤 환곡 폐지와 개선 사이의 갈등을 방치하면서 세월을 허송하였다.

문재인이 퇴임 직전 지지율 45%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까지 내 편의 뜻을 거스르지 않은 편가르기 기술이었다. 내우외환과 사분오열을 방치하거나 조장함으로써 내 편의 지지만을 확고히 하는 기술의 결과이다(2021.2.27. 조선일보 노정태 칼럼, ‘文 대통령은 철종인가, 고종인가’). 이런 국민 편가르기는 마르크스식 경제계급, 세대, 남녀, 남북문제 – 지역, 직업 갈등 조장을 말하는 평론도 있다 - 등에서 5년 내내 이뤄진다. 문은 내 편의 뜻을 받들면서 오직 지지를 위한 산술적 손익을 계산하고, 한편으로 맞대응하기 불편한 이슈와 구호를 – 예컨대 평화, 분배, 관용, 포용 – 선점하여 반대를 옭죄는 프레임을 활용했다.

문재인의 내 편, 네 편 의식은 듣기 좋은 레토릭 뒤에 숨어 임기 마지막까지 발휘된다. ‘저쪽의 문제보다 이쪽의 작은 문제들을 훨씬 부각하는 이중잣대가 문제이다’ ‘검수완박 의견을 말하지 않겠다’ ‘김정은 지금은 평가하지 않겠다’ (2022.4.25., 4.26. jTBC 퇴임 대담방송) (계속)

2020.5.18. 조선일보, 박현모 인터뷰 ‘제 편만 쓰는 文, 인재 두루 발탁한 태종 닯았다니…’
2021.2.27. 조선일보, 노정태 칼럼 ‘文 대통령은 철종인가, 고종인가’
2022.3.12. 조선일보, 서민 칼럼 ‘지역‧직업‧성별까지 둘로 쪼갠… 文정권 5년 갈라치기 종말’
2022.4.27. 경향신문, ‘문 대통령, 윤 당선인 집무실 이전 개인적으로 마땅치 않게 생각’
2022.4.28. 중앙일보, ‘부동산‧조국사태…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문 대통령 인식’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Ⅲ

역대 대통령이 여론 퇴조 국면에서 때로 지지층에 등을 돌리거나 최소한 등을 돌리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문은 임기 내내 지지층만을 바라보았고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느 평론가는 임기 말 지지율의 비결로 ‘집토끼 지키기’를 들었다(2022년 신동아 3월호. 강준만, ‘개그 원고로 끝나버린 취임사’). 

국민을 98%와 2%로 가르기. 사람 머릿수를 과세 기준으로 하는 상위 2% 자산보유자에게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는 안(2021.7.6. 민주당 특위)으로 가르고, 세대 간, 남녀 간 갈등은 페미니즘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2017.2.16. 대통령후보 토론회)으로 비롯해 20대 남녀 갈등의 최고조를 이룬다. 여성 지지율이 80%를 넘던 문의 임기 중 남녀 정책에 관해 20대 남성 56% 부정적, 20대 여성 72% 긍정적이라는 인식의 차이(2022.4.15.~4.20. 조선일보·서울대사회발전연구소 젠더의식조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 결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북 평화라는 프레임은 국민에게 허위의식을 심어주었고 문재인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대신 보증해주다 핵과 미사일을 고도화할 시간만 벌어주었다. 남은 것은 ICBM과 SRBM 무더기 도발(2022.5.25.)과 문 정부 출범 직후 수소탄급 6차 핵실험(2017.9.3.) 이후 소형화, 다탄두 기술을 보강한 7차 핵실험 준비(2022.5.13. Voice of America, 2022.6.6. IAEA)까지 ‘김정은은 솔직하고 열정적이며 결단력 있는 지도자’(2021.6.9. 美 타임지 인터뷰)라고 추임새를 넣어주는 사이 평화는 공허한 수사였음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군에 피살, 소각 유기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건(2020.9.22.)에는 김정은의 유감 서신에 대해 ‘생명 존중하는 국방위원장’이라고 둔갑시키고,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2020.6.16.) 등 도발에는 주사파와 김정은의 눈치만 보며 침묵했다.

중국의 대한반도 조기 경보레이더 설치(2022.4.21.)에는 아무 말 못하고 성주의 THADD는 임기 5년 내내 방치했다. 검찰 장악을 위해 국민의 반일정서를 격동하는 죽창가, 토착 왜구를 외치며 대일 경제 전쟁을 벌이고, 중국에는 만절필동(萬折必東, 2017.12.5. 신임 중국대사)의 굴종으로 일관했다.

반면 ‘우리 편’에는 지속적으로 우리끼리의 사인을 꺼내 든다. 조국 비리 의혹으로 서초동을 반쪽으로 만들더니 조국을 경질하면서 ‘지금까지 겪은 고초만으로도 마음의 빚을 졌다’(2020.1.14. 신년기자회견)며 우군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위안부 피해자 회계 1억여 원을 횡령한 윤미향 의원(2020.5.7.)은 의원직을 유지한 채 2년이 넘도록 1심 재판의 보호를 받고, 9억 원의 뇌물을 받고 2년을 복역한 친노 대모 한명숙 사건을 증거조작으로 몰아 검찰 수사를 수사하고(2021.3.5.) 사면복권(2021.12.24.)으로 특혜를 베푼다. 5.18 기념식 때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되뇌고, 세월호 조사와 수사는 총 9차례 중 문 정부에서만 4차례(2021.8.10. 특검 수사 무혐의, 2022.6.9. 사회적참사특조위 종료)를 진행하고도 ‘아직도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 일들이 남아 있다’(2022.4.16. 페이스북)고 아쉬움을 남긴다.

문재인 5년 내내 국민 편가르기와 지지층 바라보기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실패(?)에서 배운 교훈으로 보인다. 문은 윤석열 당선인 접견, 퇴임 연설 등에서 ‘국민 통합’을 얘기했지만 내심은 여전히 우리 편을 찾고 있었다(2022.5.2. 동아일보 박제균 칼럼, ‘대통령 아닌 半통령으로 기억될 문’). 운명을 보면 참여정부 실패가 ‘우리 편’, ‘우리 진영’에 대한 배신으로 인한 분열 때문이라고 곳곳에서 속내를 드러낸다. 

‘다음 시대를 함께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모아야 한다’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기를)
‘우리는 시민사회와의 거버넌스(협치)를 꿈꿨다’ (시민사회수석)
‘우리 진영의 분열을 막을 수 있는 계기가 그렇게 안타깝게 흘러갔다’ (정치라는 것)
‘무엇보다 아팠던 것은 진보라는 언론들이었다’ (비극의 시작)

문은 참여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한미FTA,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대연정 제안 등 노무현의 후퇴가 ‘우리 편’의 등돌리기로 돌아왔고 분열과 정권재창출의 실패를 가져왔다고 되뇐다.

‘시민사회 진영, 노동운동 진영, 나아가 진보·개혁 진영 전체가 함께 해야 한다’ ‘진보.개혁진영 전체의 힘 모으기에 실패하면 어느 민주개혁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다’ ‘시민사회진영도 대부분 관심이 없었고 지원해 주지 않았다’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참여정부의 대응에는 아쉬움이 많다’ ‘정부와 시민사회진영이 공감대를 형성해 연대의 토대로 삼아야 집권 후에도 분열하지 않을 수 있다’ (길을 돌아보다) (계속)

2021.8.20. 한겨레신문, ‘여야 합심해 종부세 후퇴, 이러고도 집값 안정 바라나’
2017.2.17. 한겨레신문, ‘문재인, 페미니스트 대통령 되겠다’
2022.5.6. 조선일보, ‘尹 찍은 이대남 49%, 李 택한 이대녀 38%’
2022.6.2. 중앙일보, ‘이대남은 국민의힘, 이대녀는 민주당...’
2021.6.25. 한겨레신문, ‘지금의 평화는 언제든 흔들려’
2018.4.28. 조선일보 사진 ‘손잡고 선을 넘다’
2020.6.17. 동아일보, ‘北, 남북화해 상징 폭파시켰다’
2022.2.11. 조선일보, ‘중국 영원한 질곡’
2020.5.8. 조선일보, ‘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 수요집회 참석안해, 윤미향 사욕 차리려...’
2021.12.25. 한겨레신문, ‘화합명분 맞춘 듯...여권‧진    보 인사도 끼워넣기’
2022.5.2. 동아일보 박제균 칼럼 ‘대통령 아닌 半통령으로 기억될 文’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Ⅳ

민노총, 전교조, 각종 시민사회단체, 민변, 참여연대 같은 ‘우리’의 역량을 모았어야 한다는 회고를 보면 그가 윤석열 당선인에게 주문하거나 퇴임사에서 말한 ‘국민’ 통합은 ‘우리 편’의 통합이었던 것이다. 언어의 재정의를 통한 의식 마비의 끝을 보게 된다.

정권을 넘긴 노무현과 달리 5년 단임으로 정권을 빼앗긴 문은 정권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선의 패배도 없다. ‘나는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입도 뻥긋 못했는데 선거에 졌다고 말하는 건 문제다’(jTBC 대담방송). 운명에서는 참여정부의 실패를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다. 정권 재창출에서 참담한 실패를 했다. 진보진영 전체가 한꺼번에 추락했다’ (퇴임)

본인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기억은 그를 배반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담담한 것 같았지만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 분위기는 어두웠다’(2022.5.10. 조선일보).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를 이어 민주당 10년을 집권하고 야당에 정권을 넘겨줬으나 문은 10년 만에 찾은 정권을 5년의 단명으로 야당에 넘겨줬다는 낭패감을 스스로 속일 수 없었으리라. 노무현 8주기 추도식에서 쟁권을 재창출한 성공한 대통령으로 돌아오겠다고 한 추도사를 잊을 수 없었으리라(2017.5.23.). 더구나 후임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자신과 맞서다가 야당으로 출마해 당선됐으니 무슨 논리와 변명을 덧붙이겠는가.

‘검찰총장을 탄압해 대선 후보로 키워주지 않았는가?’
‘다른 출신이면 괜찮은 건가요? 검찰총장이라는 게 별로 좋은 조건은 아니죠.’ (jTBC 대담방송)

2021년 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5천 달러(2022.3.3. 한국은행)로 성장했고,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2022.3.3. 세계은행)로 올라섰다. 문의 수사대로 지난 5년 동안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2022.5.9. 퇴임연설)가 됐는지는 남겨 두자. 그저 지난 5년간 삶의 지표를 보자.

문재인 정부는 대선 국면 이전까지 세제, 공급 관련 집값, 전세값 안정을 위한 부동산 정책(2021.2.5. 매일경제, ‘LH주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면제한다’을 25번 내놓았다. 그 결과 2017년 전국 아파트 평균 가격 3억 2천만 원이던 것이 전세값만 3억 4천만 원(2022.5.9. KB국민은행)으로 5년 전 아파트값보다 더 비싸졌다. 소득불균등은 나아졌을까. 2021년 4분기 상위 20%와 하위 20%의 비율로 보는 소득격차는 4년 전의 4.8배 수준에서 5.23배로(2022.4.5. 신한은행 금융생활보고서) 커졌고, 처분가능소득 배율은 전년 동기 5.03에서 5.59로 벌어졌다. 상대적 빈곤이 심화됐다는 얘기다. 청년 실업률은 2017년 9.8%에서 7.8%로 떨어졌지만 비정규직의 증가와 정부 지원 공공부문 단기 알바에 의한 착시이다. 그래서 청년 체감실업률은 여전히 20.1%에 이른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투자는 유보하고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모면하기 위한 무계획 현금 풀기의 결과이다. 

올들어 3월, 4월 취업자 수는 83만 명, 86만 명 늘었지만 절반이 정부 재정이 만든 노인 알바 자리다(통계청 3월, 4월 고용동향). 새 정부의 기재부도 ‘정부가 만든 직접 일자리와 고령 취업자 비중이 너무 높다며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기존 정책을 공박했다(2022.5.12.). 상황이 이런데도 문은 ‘소득주도성장이 경제적으로 나쁜 영향을 미쳤고 일자리도 줄였다는 식의 평가는 전혀 잘못되었다. 5년을 보면 고용은 크게 늘었고 우리 경제는 훨씬 성장했고 … 분배도 대단히 개선되었다.”(jTBC 대담방송)며 딴전을 부린다.

출산율은 2017년 1.23명에서 2021년 0.81명으로(2022.3.17. 통계청) OECD 최하위였다. 문 정부 5년 내내 출산율은 반등없이 추락했고 2021년 한 해만 저출산 대응 예산 46조 원을 투입했으나(2022.4.19. 중앙일보) 1회성 지원금으로 소모했다.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22/04/310351/

문 정부에서 국가채무는 408조 원이 늘어 2022년 말에는 1,064조 원의 빚을 남겨준다(2022년 예산안). 국내총생산의 51%에 해당한다. 문 정부 채무 증가액은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의 351조 원보다 크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업, 소득 분배 부작용을 막기 위해 세금으로 알바직 일자리를 양산하고, 13만 명의 공무원을 증원하고 복지·고용 지원금을 통해 세금을 동원한 결과이다. 문제는 향후에도 채무가 늘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2022.5.24. 중앙일보). 이러는 사이에 기업과 가계 빚 상환 부담은 OECD에서 가장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2022.2.24. IIF 국제금융협회). 저출산에 늘어나는 국가 채무는 현재의 삶이 아니라 미래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1인당 잠재 GDP 성장률은 2030년 이후 0.8%로 떨어져 OECD 최하위가 될 전망이다(2022.3.24. 한국경제연구원). (계속)

2022.5.10. 경향신문, ‘성과 계승하기를’
2022.4.6. 매일경제, ‘소득격차 5.23배’
2022.4.14. 서울경제, ‘취업자 83만 명 늘어’
2022.4.19. 중앙일보, ‘2050년에 세계 최고령국가’
2022.5.24., 중앙일보, ‘무너진 재정기강’
2022.4.20. 중앙일보, ‘물가 1~2년 더 오를 것’

그는 지게발이 용주(庸主)였다 Ⅴ-끝

이런 상황이 예견됨에도 지난 5년 문재인 정부는 국가채무를 통제할 제도는 외면하고 돈풀기에 급급했다. 대규모 지출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지역 형평을 내세워 100조 가까운 사업을 면제했고 부산 가덕도 신공항은 보궐선거를 앞두고 예타를 면제하는(2021.2.16. 가덕도신공항건설촉진특별법) 돈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에 2055년 고갈되는 국민연금 논의는 외면하고, 기업 노동 정책은 손 놓고, 미래 산업 발굴은 헤매었다. 그러는 사이 문재인 정부 5년 세월은 안전하고 평화롭고 조용하고 살만한 태평성대가 도래한 듯한 환상을 가져왔다.

고물가, 금리, 환율과 저소비, 투자, 생산(2022.4.30. 매일경제, ‘투자‧소비 고꾸라져 S의 그림자’. 2022.6.4. 조선일보, ‘트리플 상승‧트리플 하락’)이라는 현실이 진실의 순간처럼 다가왔다. 문재인 5년 퍼주기는 사회의 역동성과 탄력성을 망가뜨리고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남게 됐다. 

탈핵 이념을 실현한 탈원전으로 에너지는 불안정해지고(2022.6.3. 동아일보 ‘전력수요, 지난달 역대 최고… 올여름 전력수급 비상’), 4대강 보의 파괴와 상시 개방은 생존 환경을 파괴하기에 이르렀다(2022.6.9. 뉴시스 사진 ‘가뭄 피해 줄이자...충북도 합동 TF 가동’).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수사 기능을 봉쇄한 방탄 입법(2022.4.30. 검찰청법 개정)을 임기 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야반도주하듯 통과시키고 양산으로 떠났다. 

문재인은 태종인가, 세종인가, 정조인가, 철종인가, 고종인가. 문재인 대통령을 고종과 비교하여 문의 판단력 이념 몰입, 국가역량 훼손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하지만(2019.6.28. 조선일보 박정훈 칼럼, ‘문 대통령은 고종의 길을 가려 하는가’), 필자는 문의 ‘잊혀진 대통령’에서 지난 5년의 희미한 그림자가 회계보고 하듯 명확해지고 지게발이 철종과 그 시대가 다시 어른거림을 뚜렷이 보게 된다. 5년 단임이기에 망정이지 이런 정권이 계속됐을 상상은 끔찍하기조차 하다. 정치 지형은 169석의 민주당을 남기고 6.1 지방선거를 통해 이명박 정부 당시로 회귀했다. 문재인의 국내 정치 유산이다.

錦繡江山春似海 (금수강산춘사해)
鶯花巷陌日中天 (앵화항맥일중천)

“후일에 가객이 철종 재위 14년간의 태평상을 노래하고 가로되, 이는 태평상을 노래한 것이라기보다도 아무 정치도 없이 무사히 지나간 양을 비웃었다는 편이 옳을는지도 모른다. …… 후일에 사가가 이 임금을 가리켜 용주(庸主)라 한 것은, 결과에 있어서는 그렇게 비평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본질에 있어서 그이가 그렇듯 용주이던 것이 아니고 환경이 그이로 하여금 그렇듯 어릿어릿하게 한 것이었다.” (김동인, 운현궁의 봄)

김동인은 철종의 용열함을 본질에서 그런 것이 아니요, 환경 때문이라고 역성을 들었지만 나는 문재인을 이 시대 혼군(昏君), 민군(愍君), 또 다른 민군(泯君)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지게발이 용주였다. 끝.

#문재인 #철종 #태종 #지게발이 #강화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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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안 shl03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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