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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도강(無面渡江)

기사승인 2024.12.15  16: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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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탄스님

예전 삼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정치하던 시대 그 삼김 가운데 충청도 출신으로 노회한 한명의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늘 1.5인자나 2인자 노릇에 만족했다. 끝내 두김이 해낸 대통령 권좌에 올라보지도 못하고 총리에 만족했다.

총리를 하면서도 당권과 몇 석의 국회의석까지 지닌 그야말로 1.5인자였다. 그를 노회한 정치인이라고 한 까닭은 5·16쿠데타가 실상 그의 머리에서 나왔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는 '중앙정보부'라는 정보기관을 설립한다. 박정희의 오른팔이자 실세로 군림해 강력한 정보기관의 설립을 주장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했고 35세의 나이에 초대 중앙정보부장(장관)을 지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정보부의 부훈도 그가 한 말이다. 정보정치와 정치공작을 주도하며 양심세력을 탄압하기도 했지만, "정치가 허업"이라고  말했다.

허업인 정계에서 늘 살아있는 권력이었으며 여러 정권에서 총리를 지내며 호가호식을 했지만 자녀들이 감옥에 가거나 본인이 구속되는 치욕도 겪지 않고 크고 작은 삶의 풍파는 여러 번 있었다하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그처럼 오래도록 2인자였으며 한세월 오래도록 버틴 인물 케이스는 보기가 드물다하겠다.

그는 르네상스적인간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이였으며 그 바쁜 공직 생활을 하면서도 틈이 나면 그림을 그리고 아코디언, 만돌린등 여러 악기를 다룰 줄 알았다. 대학생 시절엔 택시회사를 경영하며 직접 운행을 한 경력 덕분에 당시 고위층 중에서는 가장 운전을 잘 하는 인물이었다. 미식가로 알려져 고급스런 양복을 입고 전국 각지의 맛집을 찾아다니며 식도락을 즐겼다.

미식가라고 해서 늘 사치스러운 산해진미를 고집한 것은 아니지만 1990년대 초반에 한 끼에 수십만 원어치의 중식 정찬을 즐겨 화제가 된 적도 있다. 그것도 여럿이서 먹은 거라 테이블 당 계산 가격은 100만 원이 훨씬 넘었고 술도 두주불사였는데 발렌타인 17년을 특히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미는 당시 부유층 놀음인 골프였다. 국민의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재직하고 있던 시절 외환위기 상황이었음에도 꿋꿋하게 골프를 쳤다. 그러나 JP가 워낙 거물이어서 감히 시비를 거는 이도 없었다. 

세간의 우스갯소리로 JP는 고급 취향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예술에 조예가 깊은 만큼 미술품 수집에도 열성이어서 심지어 렘브란트, 르누아르의 천문학적 금액을 지불해야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한학에도 조예가 있었고 심계도 깊고 깊어 말을 운치 있게 하면서도, 그 속안에 담긴 깊은 의미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서예에 일가견이 있어 멋들어진 휘호 정치와 예술에 대한 일가견 있는 면모가 중국 언론이나 정가에서 줄곧 호의적인 시선으로 다뤄졌기 때문에, 중화권 외교에 도움이 되었다.

보수언론의 어느 큰 기자 증언에 의하면 JP는 만남이 기다려지는 인물로 사석에서 만났을 때 정치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고 한다. 문화예술로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사람과의 관계가 아주 부드럽고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하지 않는 인물로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예술가라는 인상이 강할 정도라고 회고했다.

일본 문화에 영향을 받은 인물인지라 일본의 상류층 사회에서 중시하는 풍류(風流)가 체화(體化)된 것 같다는 평도 있었다.

전(前) 국회의장 박관용은 야당 의원이던 시절 국무총리였던 JP에게 항의하러 찾아간 일이 있었는데 JP가 국무총리실 입구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의 손을 꼭 잡고는 다독거리는 바람에 끝내 항의하러 갔던 사실도 잊은 채 돌아왔던 적이 있다고도 증언했다.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3권 분립의 대한민국 행정부에서의 2인자인 국무총리를 2번이나 역임했으며 대통령 빼고는 다 해본 사람이라는 JP다. 적절하게 처신하고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정치생명도 가장 길었던 정치인이 맞다.

오늘 윤석열 집권여당의 내홍이 갈수록 깊다. 정국의 주도권을 거의 잃어가는 한동훈은 이번 주말에 꼭 한가한 시간을 가져보며 그 타개책을 모색하기 위해서 JP의 리더십에 좀 관심을 가져보았음 하는 것이다.
비록 허업인 정치판이었지만, 이판에서 오래도록 견디기에는 한대표의 처신이 매우 경박했음이다.

5개월 만에 자신의 당은 초토화되고 여러 번의 자충수(自充手)로 당정의 불협화음이 초래한 결과는 너무도 참혹하지 않은가? 아직 그가 2인자의 자리에 있기에는 부족한 그릇이었음이 드러났다. 이제 잠시 두문불출하여 내공을 기름이 가장 적합한 시기이다.

명문가문의 항우가 일개 시골건달에 불과한 유방에게 대패하여 추격을 당해 오강(烏江)에 이르렀을 때, 정장(亭長)이 그에게 고향인 강동으로 돌아가 재기할 것을 권하자 무슨 면목으로 고향에 돌아가겠느냐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 무면도강이라는 고사가 이 시점에서 가장 적합하게 어울리는 정치인은 과연 누구일까.

탄탄스님 (서래사 주지·동국대 출강) han3783@hanmail.net

<저작권자 © 뉴스세종·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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